"삐이이이이이~~~"
또 하나의 영혼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났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죽은 사람보다 남은 가족들의 슬픔을 지켜보는 것이 못내 가슴아팠다. 하지만 이제는 무덤덤하게 호스를 떼어내고, 차트를 정리하고, 가족들에게 후속 조치를 설명해 준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 만큼, 내 눈물은 점점 사라져 갔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이 남자는 얼굴 형태를 잘 알아보지 못할만큼 심하게 다쳤다. 구급차에서 응급실로 들어올 때부터 피가 흥건했고, 복합골절도 상당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가 들어오는 순간,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걸 직감했다. 썩 기분좋은 예감은 아니지만 병원생활 5년차, 응급실 3년차 경력인 나의 이런 예감은 대부분 빗나간 적이 없었다.
경찰 쪽에서 연락을 했는지 이 남자가 응급 조치를 대충 끝내고 막 검사를 시작할 무렵, 그의 누나라는 여자가 도착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환자를 보는 순간, 극력히 오열하거나 심하면 까무러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비교적 젊은 여자일수록 더욱 심하다.
하지만 아직 30대 중반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 그의 누나는 무서우리만치 냉정했다. 오히려 내가 더 남자를 걱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차분하게 지금 환자의 상태와 예상되는 결과 등을 물어보았고, 담당 의사 선생님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나는 무서웠다. 혹시 배다른 동생이었고, 재산을 노리고 이 여자가 사고를 위장해 그 남자를 죽인 것은 아닐까하는 말도 안되는 의심을 할 뻔 했다.
요즘 심심풀이로 자주 빌려본 스릴러 비디오가 문제라고 생각하며, 환자의 맥박과 호흡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그 누나라는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우리 재준이, 참 좋은 애였어요."
나는 아무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딱히 대꾸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울고 있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한없이 잠겨들고 있었다. 눈은 그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을 향해 붙박혀 있었고, 미간에 살짝 주름이 져 있었다.
내가 환자의 링거줄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미동도 하지 않고 환자의 손을 잡은 채, 그 남자의 얼굴만을 응시하고 있던 그녀의 입술에서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얼른 거즈를 가지고와서 지혈을 하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 동안 병원에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본지라 이 정도 특이함엔 끄떡도 하지 않는 나였다. 결국 나는 그녀의 입술에 거즈를 대는데 성공했고, 피는 곧 멈췄다. 여전히 그녀는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응급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입술에서 피를 흘리던 때까지 단 한 순간도 그 환자에게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 여자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난 번엔 자살하려다 실패한 중년 남자가 왔었다. 손목을 긋고 방바닥에 쓰러져있는걸 마침 월세 받으러왔던 집주인이 발견해서 병원에 데려온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치료 따위 필요없다고, 어서 죽여달라고 고함지르며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나 역시 그 환자 때문에 말도 못하게 고생했었는데 옆에 있던 다른 환자의 보호자 덕분에 병원이 조용해질 수 있었다.
한 쉰 살쯤 되었을까?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 분은 자기 부인의 병간호를 하고 있었다. 입원한지도 꽤 되었고, 따뜻한 봄날, 동창회에 나갔다가 갑자기 쓰러진 부인은 첫 눈이 내렸을 때까지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부인의 남편이 난동을 피우던 남자에게 다가가더니,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화를 냈다.
"당신이 뭔데 죽느냐, 마느냐 하는거야! 사람 목숨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거라고 생각해?! 당신처럼 죽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도 있지만, 우리처럼 살고 싶어서 미치는 사람도 있다고!"
난동피우던 남자는 머쓱해졌는지 이후로는 고분고분 치료를 잘 받았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남편은 부인의 간호를 위해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했었다. 하지만 새해가 되기 전, 결국 그 부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이 곳에서 많은 죽음을 보았고, 또 그만큼의 생명을 보았다. 신생아실과 영안실은 이 병원에서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곳이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보며 웃음짓는 산모와 가족들은 언젠가 그들 역시 영안실의 싸늘한 시체가 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목놓아 오열하는 이들 역시 한 때는 웃고 떠들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결국 그 누나라는 여자도 영안실로 가고 있다. 뒷모습이 휘청거리긴 하지만 쓰러지진 않을 것이다. 그녀의 안부를 묻기 전에 방금 들어온 산모의 상태부터 확인해봐야 한다. 이제 곧 신생아실에 또 다른 울음소리가 더해지겠지.
차트를 가지러 데스크로 가는 중인데 어떤 남자가 영안실 안내판 아래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워낙 장소가 장소이다보니 영안실 바깥쪽에 따로 흡연구역까지 만들어놓았는데 아예 병원 안에서 보란 듯이 피우고 있다. 냅다 소리지르며 내쫓으려 했더니, 얼씨구, 꼼짝도 안하고 못들은척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이 병원 영안실에 폐암으로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도 못하겠지.
계속 담배끄고 나가라고 했더니, 친구가 죽었는데 담배 한 대도 못피우냐고 되려 고함을 친다.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이 곳에는 부모, 자식을 잃고 피눈물을 우는 사람도 있는데 친구라니... 기어이 그 남자는 끝까지 다 피우더니 이내 훌쩍 거린다. 휴우.
병원에서는 늘 사람이 태어나고, 또 죽는다. 오늘 이 곳에서만 또 한 명이 세상을 떠났고, 세 명이 새로 태어났다. 늘 겪는 일인지라 무덤덤했지만 오늘처럼 좀 유별난 사람들은 만나면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게 새삼 놀랍고 고맙게 여겨진다.
또 하나의 영혼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났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죽은 사람보다 남은 가족들의 슬픔을 지켜보는 것이 못내 가슴아팠다. 하지만 이제는 무덤덤하게 호스를 떼어내고, 차트를 정리하고, 가족들에게 후속 조치를 설명해 준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 만큼, 내 눈물은 점점 사라져 갔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이 남자는 얼굴 형태를 잘 알아보지 못할만큼 심하게 다쳤다. 구급차에서 응급실로 들어올 때부터 피가 흥건했고, 복합골절도 상당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가 들어오는 순간,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걸 직감했다. 썩 기분좋은 예감은 아니지만 병원생활 5년차, 응급실 3년차 경력인 나의 이런 예감은 대부분 빗나간 적이 없었다.
경찰 쪽에서 연락을 했는지 이 남자가 응급 조치를 대충 끝내고 막 검사를 시작할 무렵, 그의 누나라는 여자가 도착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환자를 보는 순간, 극력히 오열하거나 심하면 까무러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비교적 젊은 여자일수록 더욱 심하다.
하지만 아직 30대 중반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 그의 누나는 무서우리만치 냉정했다. 오히려 내가 더 남자를 걱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차분하게 지금 환자의 상태와 예상되는 결과 등을 물어보았고, 담당 의사 선생님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나는 무서웠다. 혹시 배다른 동생이었고, 재산을 노리고 이 여자가 사고를 위장해 그 남자를 죽인 것은 아닐까하는 말도 안되는 의심을 할 뻔 했다.
요즘 심심풀이로 자주 빌려본 스릴러 비디오가 문제라고 생각하며, 환자의 맥박과 호흡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그 누나라는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우리 재준이, 참 좋은 애였어요."
나는 아무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딱히 대꾸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울고 있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한없이 잠겨들고 있었다. 눈은 그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을 향해 붙박혀 있었고, 미간에 살짝 주름이 져 있었다.
내가 환자의 링거줄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녀의 입술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미동도 하지 않고 환자의 손을 잡은 채, 그 남자의 얼굴만을 응시하고 있던 그녀의 입술에서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얼른 거즈를 가지고와서 지혈을 하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 동안 병원에서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본지라 이 정도 특이함엔 끄떡도 하지 않는 나였다. 결국 나는 그녀의 입술에 거즈를 대는데 성공했고, 피는 곧 멈췄다. 여전히 그녀는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응급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입술에서 피를 흘리던 때까지 단 한 순간도 그 환자에게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 여자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난 번엔 자살하려다 실패한 중년 남자가 왔었다. 손목을 긋고 방바닥에 쓰러져있는걸 마침 월세 받으러왔던 집주인이 발견해서 병원에 데려온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치료 따위 필요없다고, 어서 죽여달라고 고함지르며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나 역시 그 환자 때문에 말도 못하게 고생했었는데 옆에 있던 다른 환자의 보호자 덕분에 병원이 조용해질 수 있었다.
한 쉰 살쯤 되었을까?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 분은 자기 부인의 병간호를 하고 있었다. 입원한지도 꽤 되었고, 따뜻한 봄날, 동창회에 나갔다가 갑자기 쓰러진 부인은 첫 눈이 내렸을 때까지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부인의 남편이 난동을 피우던 남자에게 다가가더니,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화를 냈다.
"당신이 뭔데 죽느냐, 마느냐 하는거야! 사람 목숨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거라고 생각해?! 당신처럼 죽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도 있지만, 우리처럼 살고 싶어서 미치는 사람도 있다고!"
난동피우던 남자는 머쓱해졌는지 이후로는 고분고분 치료를 잘 받았다.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남편은 부인의 간호를 위해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했었다. 하지만 새해가 되기 전, 결국 그 부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이 곳에서 많은 죽음을 보았고, 또 그만큼의 생명을 보았다. 신생아실과 영안실은 이 병원에서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곳이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보며 웃음짓는 산모와 가족들은 언젠가 그들 역시 영안실의 싸늘한 시체가 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목놓아 오열하는 이들 역시 한 때는 웃고 떠들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결국 그 누나라는 여자도 영안실로 가고 있다. 뒷모습이 휘청거리긴 하지만 쓰러지진 않을 것이다. 그녀의 안부를 묻기 전에 방금 들어온 산모의 상태부터 확인해봐야 한다. 이제 곧 신생아실에 또 다른 울음소리가 더해지겠지.
차트를 가지러 데스크로 가는 중인데 어떤 남자가 영안실 안내판 아래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워낙 장소가 장소이다보니 영안실 바깥쪽에 따로 흡연구역까지 만들어놓았는데 아예 병원 안에서 보란 듯이 피우고 있다. 냅다 소리지르며 내쫓으려 했더니, 얼씨구, 꼼짝도 안하고 못들은척 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이 병원 영안실에 폐암으로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도 못하겠지.
계속 담배끄고 나가라고 했더니, 친구가 죽었는데 담배 한 대도 못피우냐고 되려 고함을 친다.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이 곳에는 부모, 자식을 잃고 피눈물을 우는 사람도 있는데 친구라니... 기어이 그 남자는 끝까지 다 피우더니 이내 훌쩍 거린다. 휴우.
병원에서는 늘 사람이 태어나고, 또 죽는다. 오늘 이 곳에서만 또 한 명이 세상을 떠났고, 세 명이 새로 태어났다. 늘 겪는 일인지라 무덤덤했지만 오늘처럼 좀 유별난 사람들은 만나면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게 새삼 놀랍고 고맙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