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업시간에 문득 교수님께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책으로 읽든, 영화로 보든 꼭 한 번 보고 수업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사설시조 작품 중에는 부도덕한 관계의 남녀간의 애욕이나 성적 흥미거리를 주제로 삼고 있는 것들이 꽤 있는데 그것과 연관지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지겠지만, 오늘 교수님이 던지신 몇 가지 질문은 지금 이 순간까지 꽤 오래 머리 속에 남아있다.
"부도덕한 남녀 관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지는가?"
"아름다운 사랑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관계에서만 성립하는가."
"부도덕한 남녀관계는 어떤 양상으로 표현될 때 예술작품이 되는가."
"예술작품에서는 왜 윤리/도덕에 벗어나는 상황이 주제가 되는가."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문학>이라는 말씀을 되새겨보며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았나, 어제는 어떻게 살았고, 내일은 어떻게 살지 돌이켜본다.
내 마누라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해보라던 교수님의 말씀은 순간 소름을 돋게 했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만 지낸다면, 지금처럼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된다면 더 이상 그런 일은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절반을 나는 무엇을 하며 보내었던가. 내 스스로의 삶에 대한 自問에도 답하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공허히 보냈다. 아니 오늘을 공허히 보냈기에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오랜만에 오늘은 일찍 - 그렇다고 이른 시각도 아니지만 - 자야겠다. 눈앞에 닥친 과외에 찌들려하고, 과제물에 휘말려하는 모습은 아직 어린 이십대의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