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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놀기

새로운 시 쓰기법. 팬포엠(FanPoem)!

오전 수업 때 후다닥 발표를 해치우고 늦은 오후의 나른함이 스을슬 기어나올 무렵, 강의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졸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그 숱한 한자들을 눈 부라리며 꼬라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으시는게 아닌가.

십 여명이 듣는 소규모 수업에서 대뜸 손들기가 뻘쭘하여 잠시 주춤하다, '팬픽'이 아닌 '팬포엠'을 다루는 콜로키움이 있는데 관심있는 사람은 말하라는 설명이었다. 또 한번 주춤하다 언제 하는 것인지를 물었더니 "지금 이 시간에 하는 겁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씀.

주저없이 관심있다고 큰 소리로 대답했고, 나머지 학생들도 엉겁결에 동참, 강독 교본은 책가방에 넣고 낼름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옆 건물 회의실에서 이제 막 시작된 콜로키움의 정식 명칭은 "팬포엠(FanPoem)의 가능성과 실제 구현 사례 -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학 환경과 글쓰기의 방법론 연구 2" 였다.

자, 나른한 오후, 수업 하나 제끼고 왔는데 무슨 내용일까 싶어 살펴보니, 오호라! 황동규 시인도 와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과 교수님과 신춘문예 당선 시인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쯤되니 '팬픽'을 연상하며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할까 싶었던 내가 뭔가 착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말해 '팬포엠'은 Fan이 쓰는 Poem, '즉 독자가 쓰는 시'를 지칭하는 말이었으며, "Hypertext를 이용한 시 쓰기 프로그램"이었다.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은 이미 오래전부터 숱한 논의가 있어온 상황에서 유독 인터넷 문학에 대한 진지한 모색은 그닥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간간이 PC통신 작가 1세대로 불리는 이우혁이나 이영도에 관한 짤막한 언급, 귀여니에 대한 찬반양론 등이 들릴 뿐이었지 문학과 인터넷 환경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작업들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오늘 콜로키움을 통해 이전에도 "生時. 生詩", "언어의 새벽"과 같은 인터넷 문학 프로젝트(정확히는 시 프로젝트) 2000년 이후 간간이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의 무관심도 한 몫을 하겠지만, 그만큼 일반 대중들에게 문학과 인터넷의 새로운 소통 방식에 대한 관심이 그리 중요한 관심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겠다.)

90여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팬포엠'은 여러모로 상당히 매력적인 프로젝트로 보였다. 인터넷에서의 글쓰기가 현실에서의 글쓰기보다 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측면을 부각시키면서도 멋진 시를 읽고 독자가 자신만의 느낌을 해당 구절별로 덧붙일 수 있다는 사실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당 게시물들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블로그의 트랙백과 같은 장치가 없고, 팬포엠의 원본이 되는 - 독자가 '팬'임을 자쳐할 수 있는 - 텍스트의 수가 적은데다, 해당 텍스트의 각 구절 링크가 기획자의 의도대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문학, 특히 시가 인터넷을 통해 보다 더 일상적인 문화 양식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좋은 시를 읽고 그에 대한 느낌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과정에서 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시인과 독자 사이에 새로운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11월 1일, 실제 '팬포엠'의 인터넷 구현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계속 진행하고 있다. 주제발표를 했던 분은 이후로 점점 더 많은 팬포엠이 모이게 되면 훌륭한 문학 연구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자, 이제 팬포엠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즐거움이 생겨났다. 인간이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한 문학은 언제나 즐거움을 줄 것이며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색다른 시의 재미를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팬포엠 쓰는 곳 : http://www.fanpoem.co.kr
(불여우로도 잘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