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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놀기

고백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가을비라고 하기엔 너무 무거웠다. 빗물이 구두를 파고들었다. 고개 숙인 사내는 끝내 뒤돌아보지 못했다. - [짧은 글짓기]
짧은 글짓기 가을비 보슬보슬 뿌려주시는 날이면 공책에 뭐라도 하나 끄적거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요로코롬 마음이 간지러울 때 즐길만한 유용한 놀이를 찾았다. 이름하야 [짧은 글짓기] 여기에서 시작했나본데 이 곳에서 한글 설명서(?)를 읽었다. 원래 제목은 "문장 수행가가 해볼 40개의 단문 묘사"라는데 일본말이라 그런지 우리말 제목으로는 확실히 어색하다. 그래서 내 맘대로; 짧은 글짓기로 해버렸다. 일본어로 65자라는 것과 일본인이 뽑은 단어 40개라는게 걸리적거리긴 하지만 적당히 "한국어화"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음같아서야 저 일본인 홈페이지에 이러저러하니, 요리조리 쓰겠다라고 남겨놓고 싶은데 내가 아는 일본말이라곤 "스고이!"정도이니... 혹시 일본어 잘하시는 분이면 저 쪽에 이 얘기 좀 전해주시길...
이야기 실험. [동행] 동 행 (同行) [ 끝나지 않은 동행] 사고. 누나. 기철이. 간호사.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계속 추가중) + 저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상상 속의 이야기이지만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이야기, 그 속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삶의 면면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 저는 "이야기가 있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주인공이 홀로 고민하고 생각하는, 이미지 중심의 소설보다 등장인물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서사" 중심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21세기는 영상 문화의 시대, 이미지의 시대라고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은 거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우리의 이야기를 블로그의 매력으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거스르지 못할 인터넷과 영상 매체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
끝나지 않은 동행 - 기철이 또 한 번 파란불이 켜졌다. 신호등은 깜박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기철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반팔 차림으로 나온 기철이 녀석의 팔엔 소름이 돋아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조잘거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기철이와 가장 많은 대화를 했다. 고지식한 아버지나, 잔소리꾼 어머니와는 꽤 오랫동안 한 마디도 하고 있지 않을 때였다. 녀석을 만나면 막힌 봇물이 터지듯 몇 시간이고 술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는다'는 여고생들보다 한층 더 즐거워했고, 수다는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었다. 기철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장중한 멋이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그 때 녀석의 모습은 한층 힘들어간 겉멋이었다며 놀려대지만, 당시에 나..
끝나지 않은 동행 - 간호사 "삐이이이이이~~~" 또 하나의 영혼이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났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는 죽은 사람보다 남은 가족들의 슬픔을 지켜보는 것이 못내 가슴아팠다. 하지만 이제는 무덤덤하게 호스를 떼어내고, 차트를 정리하고, 가족들에게 후속 조치를 설명해 준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는 만큼, 내 눈물은 점점 사라져 갔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이 남자는 얼굴 형태를 잘 알아보지 못할만큼 심하게 다쳤다. 구급차에서 응급실로 들어올 때부터 피가 흥건했고, 복합골절도 상당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가 들어오는 순간,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걸 직감했다. 썩 기분좋은 예감은 아니지만 병원생활 5년차, 응급실 3년차 경력인 나의 이런 예감은 대부분 빗나간 적이 없었다. 경찰 쪽에서 연락을 했는지 이 남자가 응급..
끝나지 않은 동행 - 누나 바람이 한결 차가워졌다. 이연이는 자뭇 옷깃을 여미며 이제 슬슬 겨울 옷을 꺼내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연이도 한 때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친구들과 단풍구경을 가곤 했지만 결혼한 뒤로는 옷 생각이 먼저 난다. 남편은 늘 아직도 신혼이라고 주장하지만, 연애하던 때의 바람은 이렇게 차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바람에 부대낀 얼굴이 발가스름해질 무렵, 슈퍼에 도착했다. 남편이 귀가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오늘 저녁은 무얼 해먹을지 즐거운 고민을 하던 것도 꽤 오래 전 일이다. 진수성찬이라는 둥, 이렇게 맛있는 밥은 처음 먹어본다는 둥 늘 요란하게 식사를 하던 남편이 조용히 밥을 먹게된 그 어느 날부터 이연이도 배고프지 않기 위해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오늘은 고기도 사고, 당..
끝나지 않은 동행 - 사고 나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기계적으로 기어를 넣고 액셀레이터를 밟고 가끔 브레이크를 밟으며 운전하고 있다. 눈물 따위는 흐르지도 않는다. 아니 오히려 머리 속이 맑아지고 있다. 빵빵대며 끼어드는 택시도, 이리저리 차선을 바꾸며 곡예질하는 새파란 녀석들이 탄 외제차도 오늘은 곱게 보내준다. 나는 그저 조용히 운전대만 잡고 있을 뿐이다. 처음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또 그 녀석이 음주운전하다가 접촉사고를 낸 줄로만 알았다. 중학교 때부터 바른 생활 사나이로 불리던 녀석이었는데 유독 술만큼은 바르게 마실줄 몰랐던 녀석이었으니까.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길래 이번엔 좀 크게 다쳤으리라 짐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번쯤 크게 당해봐야 정신 차리고 다시는 음주 운전을 안하게 될테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
새로운 시 쓰기법. 팬포엠(FanPoem)! 오전 수업 때 후다닥 발표를 해치우고 늦은 오후의 나른함이 스을슬 기어나올 무렵, 강의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졸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그 숱한 한자들을 눈 부라리며 꼬라보고 있는데,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으시는게 아닌가. 십 여명이 듣는 소규모 수업에서 대뜸 손들기가 뻘쭘하여 잠시 주춤하다, '팬픽'이 아닌 '팬포엠'을 다루는 콜로키움이 있는데 관심있는 사람은 말하라는 설명이었다. 또 한번 주춤하다 언제 하는 것인지를 물었더니 "지금 이 시간에 하는 겁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씀. 주저없이 관심있다고 큰 소리로 대답했고, 나머지 학생들도 엉겁결에 동참, 강독 교본은 책가방에 넣고 낼름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옆 건물 회의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