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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날이 덥다. 일기예보에서는 주말까지 비소식이 없다는데 여기는 바람이 건듯 부는 모양새가 소나기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만 같다. 끈적한 날씨는 안그래도 허한 마음을 잡아당겨 축축 늘어지게 한다. 의욕이 없다. 책을 읽어도 글자가 눈에서만 맴돌고 음악을 들어도 이어폰만 윙윙거린다. 속은 메스꺼울 때가 많고 가끔 어지럽기도 하다. 때론 쿡쿡 쑤시는 느낌 때문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하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업을 하고, 밥을 먹고, 농담을 한다. 그래, 변한건 아무것도 없고 변해야할 이유도 없는데... 힘을 내야지, 이렇게 지낼 순 없지, 이미 다 알고 있는걸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생각하는대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매일 저녁 동생의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담배 한 모금 조용히 삼키고 아무렇..
내 동생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개. 친구가 부를 때는 종합무술인, 엄마가 부를 때는 꿀돼지, 아빠가 부를 때는 베드로, 형아가 부를 때는...너! 야! 그리고 이 새끼. 형아가 부를 때는... 나는 한번도 동생을 왕자님으로 부르지 않았다. 진심으로 따뜻하게 내 동생을 불러본 적이 몇 번이었던가.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버려줘서 고맙다 참회문1 내 순정에 다쳤을 첫사랑 그대에게. 이제야 그대에 대한 무수한 원망을 내려놓고 비로소 참 많이 미안했었다. 참회할 용기가 난다. 미안하단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난 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자만이 뿌리 깊었나, 아니다 자기연민이 독했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가는 건 주름만이 아니다. 살면서 홍역처럼 반드시 거쳐가야 할 경험과 남과 별다르지 않게 감당했어야 할 상처들이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그대와 주고받았던 모든 것들이 마냥 별스러워 엄살인 줄도 모르고 악을 쓰듯 독하게 킁킁거렸다. 그때 그대는 참으로 냉정했었다. 원망스러웠던 그 순간이 이제야 맞춤맞은 순리였음을 알겠다. 나를 버려주어 고맙다, 그대. 순간 이 글을 쓰며 겁이 난다. 나만큼 설레지 않고 나만큼 애타하지 않고 나만큼 절..
오늘은 또 어떤 꿈을 꾸는가 작년과 올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부족한 점들을 하나씩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교과 관련 지식에 있어서 '애들보기 부끄러운 수준'일 때가 있어서 적잖게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올해초부터는 조금씩 교과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나도 잘 모르는데 애들이 자주 물어본 것' 위주로 정리해보는 중이다. 숱한 HWP파일과 A4 자료들은 아직 엄두도 못내고 있지만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물어보는 것들을 스프링노트에 메모해두는 것만으로도 꽤 유용한 자료가 된다. 대개 질문하는 아이들은 그 반에서 '공부 꽤나 하는 아이'인 경우가 많고, 그런 질문의 대부분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방학 때 이 곳에 새끼 블로그(!?)를 하..
행복한 하루 내일이 "스승의 날"입니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손수 쓴 편지와 작지만 예쁜 선물을 챙겨서 왔더군요. 작은 화분 하나와 색분필 한 통, 예쁜 화과자 한 개... 덕분에 종일 마음이 뿌듯합니다. 별 것 아닌 내용이지만 손으로 쓴 편지와 쪽지는 또 얼마나 정감있는지... 여학생들이 이런 날에는 특히 더 잘 챙겨줍니다. 이래서 우리 아부지께서 늘 "내가 딸을 하나 낳았어야되는데..."라며 가슴을 치셨던 걸까요. 올해엔 수업을 들어가지 않는 반 아이들에게서 편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한편으론 기쁜데 한편으론 내가 수업을 하도 엉망으로 해서 수업들어가는 반 아이들은 조용~한 것인지 은근슬쩍 고민도 해봅니다. 헤헤... 학교 교육이 아작났다며 온통 시끄러운 마당이지만 오늘 같은 날이면 조급하고 복잡했던 마음에도 여유가..
이것은 시가 아니다 며칠 전 여자친구가 읽고 있던 시집의 제목은 [이것은 시가 아니다]였다. 제목을 본 순간, 마그리트가 그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그림이 생각났다. 3학년 국어생활 교과서에서 언어의 자의성을 언급하면서 마그리트의 작품을 설명했던 내용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몇 작품을 훑어보니 꽤 재미있을 듯하여 여친이 다 읽으면 빌려보기로 했다. 이승훈이라는 이름을 얼핏 본 것 같기도 해서 찾아보니 '갈매기 나라'라는 시를 문제집에서 슬쩍 본 것 같다. (이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작품이나 시인은 문제집이 먼저 생각난다;;) 답지 중의 하나로 제시된 작품이었는데 내가 이해하기도, 학생들에게 설명하기도 난해한 작품이어서 대~충 넘어갔던 것 같다; 내친 김에 인터넷을 좀 둘러보면서 읽을거리 몇 가지를 찾았다. 한겨레..
암울했던 중간고사 뻔하고 뻔한 문제를 비집고, 기출 문제와 시중 참고서의 문제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렵지 않은 문제를 만든다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다. 썼다가 고치기를 수십번, 인쇄했다가 고치기를 몇 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인쇄한걸 보니 또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 포장까지 마친 문제지를 다 뜯어서 다시 포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 첫 날, 편집 실수가 여러 개 발견되었고 나는 얼굴이 노래져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날, 3학년 과목에서 내가 낸 문제 하나가 중복 답을 인정해야할 상황이 벌어졌고, 지금 그 뒷처리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올해 내가 맡은 두 과목에서 모두 이런 일이 생긴걸 보면 뭔가 좋지 않은 변화가 생긴 것 같아서 불..
평등하게 바라보기 음식이라는 것은 만드는 사람의 실력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맛을 보는데는 차이가 없다. 그렇게 평등한 것이 맛이야! 그러니 앞으로는 음식에 대해서 나는 물론이고 저 끝의 생각시까지 모두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여 서로 자극을 주고 발전하도록 하라! 모두들 노력하여 실력을 쌓는 사람에게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기회를 줄 것이다. 알았느냐? - 정상궁 마마님, 정상궁 마마님의 가르침이 새롭게 다가온 요즘이다. 학교성적이라는 것은 부모의 재력과 관심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학생 개인의 인격적 성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는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히고 곧이어 질 나쁜 아이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쉽게 ..